라슬로 모홀리-너기(헝가리어: László Moholy-Nagy, /məˌhoʊliˈnɒdʒ/; 헝가리어 발음: [ˈlaːsloː ˈmoholiˌnɒɟ]; 본명: László Weisz; 1895년 7월 20일 – 1946년 11월 24일)는 헝가리 출신의 화가이자 사진가로, 바우하우스 학교의 교수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그는 구성주의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예술에 기술과 산업을 통합하는 것을 강력히 지지했습니다. 예술 평론가 피터 셸달(Peter Schjeldahl)은 그를 “끊임없이 실험하는” 예술가로 칭하며, 회화, 드로잉, 사진, 콜라주, 조각, 영화, 연극, 글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구적인 작업을 펼쳤다고 평가했습니다.[1]

모홀리-너기는 첫 번째 아내인 루시아 모홀리(Lucia Moholy),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 등 여러 예술가들과 협력하여 작업하기도 했습니다.[3][4]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시카고에 설립한 디자인 학교로, 이 학교는 현재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의 일부로 남아 있으며, 미술사가 엘리자베스 시겔(Elizabeth Siegel)은 이 학교를 “그의 가장 중요한 예술 작품”이라고 불렀습니다.[3] 그는 또한 고도의 현대주의를 옹호하는 책과 글을 다수 저술했습니다.[3]

초기 생애 및 교육 (1895–1922)

모홀리-너기는 헝가리 바치보르쇼드(Bácsborsód)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László Weisz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5] 그의 어머니의 이종사촌은 지휘자 게오르그 숄티 경(Sir Georg Solti)이었습니다.[3] 모홀리-너기는 3형제 중 둘째였지만, 아버지 리포트 바이즈(Lipót Weisz)는 가족을 떠났고,[4] 남은 가족은 외삼촌 구스타프 너기(Gusztáv Nagy)에게 보호와 지원을 받았습니다.[4] 구스타프 너기는 변호사였으며, 라슬로와 그의 동생 아코스(Ákos)의 교육을 후원했습니다.[4] 라슬로는 그의 멘토의 성을 따라 ‘너기’라는 헝가리 성을 채택했으며, 나중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을 모홀(Mohol)의 이름을 따서 ‘모홀리’를 추가했습니다.[6]

라슬로는 헝가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세게드(Szeged)에 있는 체육학교를 다녔습니다.[4] 처음에는 작가나 시인이 되고 싶어했으며, 1911년에는 그의 시 몇 편이 지역 일간지에 실리기도 했습니다.[4][7] 1913년부터는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7]

제1차 세계대전 동안 1915년에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에 포병 장교로 입대했습니다.[7] 그는 전쟁 중에 크레용 스케치, 수채화, 그리고 전쟁 경험을 기록한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7] 1917년 7월, 러시아 전선에서 부상을 입고 부다페스트에서 요양했으며,[7] 그 시기에 그는 예술 잡지 JelenkorMa에서 활동하며 예술적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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