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ános Bihari

야노시 비하리(1764년 10월 21일 – 1827년 4월 26일)는 헝가리 로마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로마 학문 음악의 선구자였다. 그는 헝가리 민속 음악과 고전적 요소를 혼합한 음악 장르인 버브룽코스(verbunkos)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집시 음악”은 높은 패션으로 승격되었으며, 야노시 비하리는 그 인기에 크게 기여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는 비하리의 연주를 “그의 마법 같은 바이올린이 우리의 매혹된 귀에 눈물처럼 흐른다”고 찬양했다.

전기

야노시 비하리는 헝가리 나지아본(현재의 슬로바키아, 벨케 블라호보)에서 로마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도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비하리는 가족의 음악적 배경 속에서 성장하였다. 1801년, 페스트(현재의 부다페스트)에서 비하리는 1명의 짐발리스트와 4명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결성했다. 이 앙상블은 빠르게 인기를 얻었고 헝가리와 해외의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을 했다.

비하리는 그의 성공적인 공연 경력을 통해 각 지역의 민속 음악과 학문적 음악을 배워 이를 자신의 공연에 접목시켰다. 그의 인기는 그에게 귀족처럼 호화로운 생활을 가능하게 했으며,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개인 하인을 두어 바이올린을 관리하게 하였으며, 호화로운 호텔에 머물기도 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황제 앞에서 연주하라는 초대도 받았다.

프란츠 리스트, 루드비히 판 베토벤, 파블로 데 사라사테 등 많은 유명 작곡가들이 비하리의 멜로디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의 작곡들은 로마 음악의 발전과 그것의 고전 음악 전통으로의 통합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24년에 비하리는 왼손을 심하게 다쳤고, 이로 인해 그의 연주 능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 이후 그의 인기는 줄어들었고, 그는 페스트에서 가난하게 생을 마감했다.

비하리는 84곡의 클래식한 음악 작품을 남겼으며, 이는 그의 로마 및 헝가리 음악에 미친 깊은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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